'엄마'라는 말에 가려진 나의 이름
언젠가부터 '나'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엄마'라는 호칭만이 남았습니다. 퇴근 후엔 딸의 일과를 들어주고, 늦은 밤엔 숙제를 도와주며, 새벽이면 다시 다음 하루를 준비합니다. 나의 피로, 나의 감정, 나의 외로움은 모두 뒷전입니다. 내 안의 여자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고,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너짐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사라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런 모든 엄마들의 이름 없는 무게에 대해, 그리고 그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 '나'를 기억하는 여정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사랑보다 무거웠던, 엄마라는 이름
1. 사춘기 자녀와의 거리, 감정의 소진
아이와의 관계는 아이가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말수가 줄고, 마음의 문을 닫고, 엄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밀려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딸의 변화는 당연한 성장 과정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시리고 아픕니다. 감정은 소모되고, 나도 누군가의 품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럴 시간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감정의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부으며 나는 점점 말라갑니다. 누군가에게 기댈 여유조차 없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감정의 균형은 서서히 흔들리고,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흐릿해져 갑니다. 이 고단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랑보다는 '회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건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2.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순간
한때는 내 이름을 부르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내 취향, 내 감정, 내 생각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누구 엄마'로만 불립니다. 나의 시간, 나의 취향은 뒷전이 되고,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립습니다.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던 날들, 나를 위해 옷을 고르고, 나를 위해 거울을 보던 순간들. 이제는 그런 나를 다시 꺼내어 보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갈망하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시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 그것이 지금의 내겐 가장 절실한 회복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삶의 중심으로 걸어가고자 합니다. 더는 뒤에 머무는 이름이 아니라, 당당히 나를 위한 이름으로.
3. 지워진 '여성으로서의 나', 사랑할 틈조차 없는 현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은 나의 영역 밖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군가를 설레는 감정으로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나를 치장할 여유도, 마음을 열 용기도 부족합니다.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절감하는 날들 속에서, 오히려 사랑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따뜻함을 갈망하는 나 자신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뒤로 미뤄졌을 뿐입니다. 아이가 자라고, 삶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다시 사랑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오늘도 조용히 나를 다독여야 합니다. 이 지워졌던 시간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존재의 감각, 그것이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 여성으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입니다.
4. 보이지 않는 노동,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나
육아와 가사노동은 외부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노동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집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이 노동은 보이지 않지만, 그 무게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자주 침묵 속에서 누적됩니다. 누구에게 말해도 쉬워지지 않을 피로와,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감정의 고립.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놓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노동의 중심에는 '나'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없으면 이 모든 구조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시 눈에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나를 드러내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5. 딸을 위해서라도,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결심
딸은 어느새 나의 거울이 되어 있습니다. 나의 말투, 감정, 행동을 따라 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더욱 조심스럽고 단단해지려 애씁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엄마가 행복해야 딸도 행복하다'는 단순한 진실입니다.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결국 상처 입은 상태로 딸을 대하게 됩니다. 감정은 전염됩니다. 지친 나로부터는 온기보다는 피로가, 애정보다는 무거움이 흘러갑니다. 그러니 딸을 위한 진짜 사랑은, 나를 먼저 보살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딸이 나를 보며 자기 삶의 방향을 설계하듯, 나 또한 나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엄마라는 이름의 진짜 깊이이며, 나라는 사람의 온전한 회복입니다.
나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시간
엄마라는 이름은 분명 위대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갇혀 나 자신을 잊는다면, 언젠가는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그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쳐 있는 마음을 안고 하루를 버팁니다. 그러니 이 시간은 필요합니다. 사랑을 꿈꾸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안아주는 연습. 다시 '나'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시급한 회복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성장해 나를 놓아줄 때, 그 빈자리를 허전함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를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시간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진짜 '삶'을 살아가는 연습입니다.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시작해야 할 진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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