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용한 관찰자, 그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어떤 길을 택해야 옳은지, 무엇이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줄지 고민한다. 하지만 이 모든 선택의 순간들은 우리 삶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 같지만, 정작 지나고 보면 애매하고 겹치고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선택한 것들'만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도 이루어져 있다. 이 조용하지만 무게 있는 주제를 한 줄의 시로 건드린 이가 있다. 바로 폴란드의 시인이자 철학자라 불렸던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감정은 강렬하지만 절제되어 있고, 언어는 간결하지만 깊다. 삶과 존재에 대해 소리치지 않고, 단지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조용히 묻는 듯한 그녀의 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선택, 존재, 그리고 조용한 저항의 시학
1. "선택의 가능성들(Possibilities)" — 삶의 수많은 갈래 앞에서
쉼보르스카의 대표 시 중 하나인 "선택의 가능성들"은, 단순한 선호 목록처럼 시작된다. "나는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합니다", "나는 책을 읽지 않는 날보다는 책을 읽는 날을 좋아합니다" 등등. 하지만 이 나열은 곧 우리 삶의 취향, 습관, 성향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임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삶의 뒷면에서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은근히 짚는다.
그녀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왜 그렇게 선택했나요? 이 단순한 질문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SNS에서, 일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판단하며 살아가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진짜 질문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2. "끝과 시작(The End and the Beginning)" — 전쟁과 기억에 대하여
이 시는 전쟁이 끝난 뒤의 잔해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진흙에 빠진 깃발을 꺼내야 한다"는 구절처럼, 쉼보르스카는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그 뒷수습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시의 힘이다. 위대한 사건보다, 그 이후의 조용한 손길에 주목하는 것.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났던 수많은 재난과 아픔들을 떠올릴 수 있다. 뉴스 속 사건들보다, 그 뒤에서 그것을 묵묵히 감당해 내는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진짜 이야기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3. "일상(Life-While-You-Wait)" — 무대 위 배우처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쉼보르스카는 우리 모두가 무대 위 배우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대본은 없고, 카메라도 없지만, 매 순간을 연기하듯 살아간다는 통찰. 특히 현대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연출하고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는 강한 공감을 준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연기하는 동시에 관객이다. 이 이중성은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회사에서, SNS에서, 가족과 친구 앞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얼굴로 살아가며,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인지 혼란을 느낀다. 쉼보르스카는 이 모든 모순을, 단지 한 줄의 시로 부드럽게 찔러낸다.
4. "기념비적인 것들(View with a Grain of Sand)" — 작은 것들 속의 진실
그녀는 자주 '작은 것들'에 주목한다. 모래알, 눈송이, 마른 나뭇가지 같은 작고 흔한 것들. 하지만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임을 쉼보르스카는 알고 있었다.
"기념비적인 것들"이라는 역설적 표현 속에는, 우리가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인식하라는 철학적 제안이 숨어 있다. 인생을 거창하게만 보지 말고, 오늘 아침 마신 커피 한 잔, 길가에 핀 작은 들꽃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는 말.
우리 모두의 선택을 비추는 거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어느 날엔 날카롭게, 어느 날엔 위로처럼. 그것은 그녀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역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결코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손을 내밀고, "지금 이 마음, 당신도 알고 있나요?"라고 물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그리고 때로는 그 선택이 무겁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 쉼보르스카의 시를 한 줄 읽어보자. "나는 차라리 실패하더라도, 내가 택한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는 우리의 삶을 더 조용하게,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수많은 가능성들 사이에서, 조용히 나만의 선택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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