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 내 마음은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다
몸이 침대에 눕는 순간, 세상이 멀어지는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마음은 저항하듯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누구는 말한다. 너무 많이 잔다고. 그렇게 자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하지만 나에게 잠은 도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 미처 말하지 못한 속마음, 멍든 하루의 찌꺼기들이 몸을 짓누를 때, 나는 누워야만 했다. 그것은 나태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본능이었다. 숨을 돌려야 다음을 살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무기력’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깊고 절박한 이유에 대해서.
무너진 마음을 덮는 밤의 쉼표
1. ‘잠이 나를 덮어줄 때,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는 감각
사람은 누워 있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라 부르며,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게 잠은 도피도, 낭비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몰래 숨 쉬는 시간이었다. 낮 동안 감정이 넘치도록 쌓이고, 상처받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나는 스스로를 눕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아무 생각도 닿지 않도록. 마치 이불이 내 모든 감정을 감싸주는 것처럼.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안의 아픈 아이처럼 울고 있는 마음을 잠이 조용히 안아주는 듯했다. 그 안에서만 나는 잠시 쉴 수 있었다. 진짜 나로 살아 있는 유일한 시간. 그래서 잠은 내게 쉼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으려는 마지막 끈이었다.
2. ‘피로’가 아니라 ‘감정의 과포화’로 인한 쉼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피곤하다고, 일이 많아서 지쳤다고. 하지만 나의 피로는 단순한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 종일 꾹 눌러두었던 감정의 과포화 상태였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나에겐 수십 번의 자기 부정과 참음이었고,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신경 쓰다 지쳐버린 날들이었다. 마음은 계속해서 감정의 경보를 울리지만, 나는 일상 속에서 외면하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결국 몸을 통해 신호를 보낸다. 그게 바로 나의 ‘잠’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움직이기 싫고, 생각하기도 버거운 상태. 그것은 게으름이나 나약함이 아니었다. 감정의 홍수가 지나간 뒤의 침묵, 그 잠깐의 정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나를 회복시킬 시간.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였다.
3.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너무 애쓴 사람’에게 오는 몸의 신호
사람들은 쉽게 판단한다. ‘게을러서 누워만 있다’, ‘의지가 없어서 그런다’. 그러나 정작 그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버티고, 얼마나 노력하며 하루를 살아냈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누구보다 애썼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감정을 삼켜가며 버텨낸 사람들. 그들의 몸이 이제야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제 좀 쉬어야 해”라고. 나는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애써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잠’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그것은 결코 무기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의 언어다.
그저 살아내는 하루였지만, 나는 나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불을 덮고, 자신을 세상에서 잠시 숨긴다. 그 숨김이 나약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살리기 위한 가장 단단한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마음이 쉬지 못하면, 몸도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그러니 부디 당신의 잠을 미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회복이다. 누군가에게 ‘잠’은 피로를 푸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감정의 숨구멍이자 살아남기 위한 바닥이었다. 지금 이 순간,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무너지려는 게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버티는 중이다. 잠은 그 싸움의 일부다.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를 위한 전장이자 안식처다. 오늘 밤, 이불을 덮으며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이 시간을 선택한 거야."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견뎌낸다. 살아 있음으로써 충분한 하루를.
'마음 회복 | 라이프 인사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흘려야 하는 이유 (0) | 2025.06.16 |
---|---|
그때 울지 못한 눈물이, 지금 나를 흔듭니다 (0) | 2025.06.15 |
“말 없이 마음을 끌어안는 사람들: 고통을 느끼는 능력, 감당하려는 용기” (0) | 2025.06.15 |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0) | 2025.06.13 |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것들 (1) | 2025.06.13 |